Ⅰ. 서 론
최근 들어 리서치를 통해 그 춤의 역사적, 형태적, 예술적 의미와 가치를 탐구하여 무대 에 올리는 공연이 시도되고 있다. 대표적인 일례로 렉쳐 퍼포먼스의 개념을 바탕으로 한 무용역사기록학회의 도큐퍼포먼스 「Reconnect History, Here I am (2022년 9월 29-30일 문화비축기지T1)」을 들 수 있다. 새로운 무용경향으로서 2010년대부터 시도된 렉쳐 퍼포 먼스는 예술과 학계의 경계를 넘나들며 균형을 추구하는 분야로서, 강연에 공연과 교육적 측면을 융합하여 청중의 지적, 감성적, 정서적 참여를 이끈다(심정민 2023, 44-45).
도큐퍼포먼스 「Reconnect History, Here I am (2022년 9월 29-30일 문화비축기지T1)」 는 100년간 춤 역사상에 남겨진 무용가들의 파편들을 실천적으로 재구성하여 새로운 역사 적 군집의 제안에 목적을 둔다(김재리 2022, 5). 즉, 근대무용가가 남긴 흔적과 기록을 찾 아 참여 안무가의 관점과 개성에 따라 새롭게 조합함으로써 역사적 무용가의 예술철학 혹 은 작품적, 안무적 특징을 현대 안무가의 해석과 독창성으로 드러내는 열린 개념의 창조적, 실천적 예술형식을 추구한다. 이에 도큐퍼포먼스는 무용가에 대한 다각적이고 다양한 형 태의 자료수집과 연구를 기반으로 안무 아이디어를 착안 혹은 발전시키는 연역적 안무작 업 과정과 미완결 형식이 특징이다. 여기서 연역적 안무 방식이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사실이나 원리(작품 소재 관련 자료들)로부터 개별적이고 특수한 사실이나 원리(작품 주제 및 장면구성)를 이끌어내는 안무 방식을 의미한다.
제25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와 무용역사기록학회의 공동기획으로 이뤄진 도큐퍼 포먼스 「Reconnect History, Here I am (2022년 9월 29-30일 문화비축기지T1, 예술감독 최해리, 연출 김재리, 드라마투르기 정혜정)」에서 안무가 중 1인으로 참여한 본 연구자는 근대무용가 최승희의 장고춤을 리서치한 작품, 「Composition」을 공연하였다. 공동작업의 열린 리서치 과정을 통해 무용예술과 함께 글쓰기에 재능있는 최승희의 새로운 일면 및 그녀의 논평, “조선민중과 무용”에 담긴 예술사회학성을 발견하였다. 이에 최승희 논평의 예술사회학성을 중심으로 작품 주제 및 장면을 설정하였으며, 논평의 핵심 내용을 일언반 구(一言半句) 형식의 대사와 무용 움직임으로 표현했다. 다음 단계로 작품에서 제시하고자 했던 최승희 무용철학의 예술사회학성을 학술적으로 탐구하는 실행연구를 진행하였다. 일 반적으로 렉쳐 퍼포먼스는 선(先) 리서치, 후(後) 공연 발표로 종료되는 단선구조이다. 그 러나 본 연구는 실기와 이론 융합의 3차 순환구조(1단계 리서치와 2단계 공연 그리고 3단 계 학술연구)를 지닌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학술연구와의 차이점이 있다. 동시에 리서치만 이 공연에 기반되는 것이 아니라, 공연도 학술연구에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실기와 이론 융합의 새로운 하나의 발전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학술연구를 포함해 수집된 최승희의 글쓰기 기록자료는 저서 8편, 문학 3편, 기고문 9편 으로 총 20편이었다. 이는 그녀가 무용예술가로서 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걸친 많은 글쓰 기와 이론을 펼친 지식인이자, 경험적 지식을 체계적인 무용학으로 정립하고자 노력해 온 탁월한 무용이론가임을 의미한다.
최승희가 피력한 무용이론 중에서 특히, 2024년 9월 1일의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소 웹 사이트에 전문(全文)이 보존된 최승희의 논평, “조선민중과 무용”은 여러 글 중에서도 2017년 4월 22일 세계일보에 기고한 차길진에 의해 첫 무용평론으로 평가받았으며, 이 논평에서 요지를 이루는 ‘무용은 사회적 현상’, ‘대중에게 무용을 환원’, ‘새로운 미래 무용 의 과제는 건강한 대중예술무용’의 주장은 예술사회학의 아버지-아놀드 하우저(Arnold Hauser)의 이론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하우저는 1910년대부터 1930년대에 경쟁 하던 역사주의, 실증주의, 마르크스주의 방법론들을 통합한 대표적인 예술사회사 및 예술 사회학의 이론가이다(구진경 2001, 1). 한편, 그의 예술사회학이 성립된 1930년대에 최승 희가 독립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점, 그리고 2017년 4월 22일 세계일보에 기고한 차길진에 의하면 어렸을 때부터 카프(KAPF,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의 핵심 회원 으로 활동한 오빠의 영향을 받아 진보적, 정치적 성향의 경향문학을 더 좋아했다는 점은 하우저 예술사회학 이론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최승희의 무용예술철학 관련 연구(유현진 2002: 성앵란 2006: 이애순 2010: 이 영란 2011: 주디 반자일 2017)는 주로 일대기의 예술활동이나 예술작품을 중심으로 예술 미학적 관점에서 문화적, 정치적, 예술사조 등을 고찰하였으며, 이론연구는 일부 저서와 기고문을 간단하게 소개하거나 언급하는 제시 형태이거나, 월북 이후 북한에서 저술활동 소개를 통한 그녀의 무용학 혹은 무용이론을 개괄적으로 제시 혹은 근대성과 관련된 그녀 의 작품세계와 사상 연구가 주류를 이루었다. 반면에 최승희의 무용이론을 예술사회학 관 점에서 중점적으로 연구하거나 특히, 아놀드 하우저 이론과의 관계성을 고찰한 연구는 미 흡하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예술, 학술 그리고 교육적 차원의 융합 공연-도큐퍼포먼스의 리서 치 과정에서 발견된 최승희의 첫 논평이자, 무용이론을 피력한 “조선민중과 무용”과 아놀 드 하우저의 예술사회학 개념과의 관계를 연구하고자 한다. 논평은 주요 요지가 담긴 二장 과 三장 부분을 중심으로 분석했으며, 원문은 한자어의 한글번역 및 현재의 띄어쓰기 양식 으로 변환하여 사용하였다. 이는 연구방법의 제한점이기도 하다.
본 연구는 도큐퍼포먼스 안무작 「Composition」에서 표명한 최승희 무용철학에 담긴 예 술사회학성을 학술적으로 탐구하고자 한 실행연구이다. 이는 그녀의 무용철학에 대한 새 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일 연구이자, 예술창작이 학술연구 대상으로 발전하는 일 사례로, 실기와 이론의 융합과정에서 발생한 도큐퍼포먼스의 상호 선순환적인 실천적 예술 연구 가치를 재고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Ⅱ. 최승희의 글쓰기 자료 분석
1. 자료수집
1차 최승희 예술활동의 다양한 자료-사진, 화보, 신문기사, 유튜브 영상, 저서, 논문, 논 평, 수필, 단편소설, 자서전 등의 기록들은 인터넷 자료 중심으로 수집하였다. 2차 학술연 구를 위한 자료수집은 본 연구자가 최승희의 예술철학과 사상을 중심으로 학위논문, 학술 논문 등의 문헌자료를 국립중앙도서관 및 RISS에서 추가 수집하였다.
2. 자료분석
최승희의 글쓰기 관련 기록은 형태상 저서, 문학, 기고문 3가지로 구분하였다. 편 수는 저서 8편, 문학서 3편, 기고문 9편 이상, 총 20편으로, 이를 제시하면 <표 1>과 같다.
표 1
최승희의 문헌목록(Choi, Seunghee's Bibliography)
분류 | 제목 | 발표연도 | 특징 |
---|---|---|---|
저서 | 무용극 대본집 | 1958 | 무용이론 정립 |
조선민족무용 기본 | 1958 | ||
조선 아동무용 기본 | 1964 | ||
예술적 기량과 예술적 연마 | 1964 | ||
예술적 전통과 예술적 창조 | 1965 | ||
인민의 애국투쟁을 반영한 우리나라 무용예술 | 1966 | ||
조선무용 동작과 그 기법의 우수성 및 민족적 특성 | 1966 | ||
문학서 | 나의 자서전 | 1936 | 자서전 |
최승희 자서전 | 1937 | ||
전선(戰線)의 요화(妖花) | 1938 | 단편소설 | |
신문 및 잡지 기고문 | 수만 관객앞에서 비희교집의 생활 고국의 웃음, 이국고독 난언의 슬픔 | 1928 | 수필 |
조선무용의 개량-그것은 우리의 의무올시다 | 1928 | ||
날씬한 다리는 무용가의 보물 | 1929 | ||
석정막과 나의 관계 | 1933 | ||
조선을 떠나면서–오직 여러분의 성원을 바랄 뿐입니다 | 1937 | ||
무용15년 | 1940 | ||
일가일언(一家一言) | 1930 | 논설 | |
공연무대에 서서는 | 1931 | ||
신여성이여 무용하라 | 1932 | ||
조선민중과 무용 | 1932 | ||
무용극 원본 창작 강좌 | 1965 | ||
무용창작 제 문제를 논함 | 1951 | ||
무용과 문학-무용극원본창작을 중심으로 | 1961 |
1) 저서
최승희의 대표 저서로는 주지하다시피, 무용이론을 집대성한 『무용극대본집(1958)』, 『조선민족무용 기본(1958)』, 『조선 아동무용 기본(1964)』등이 있다. 무용대본은 작품과 문 학 장르 모두에서 위치를 차지할 만한 것으로, 무용과 문학발전에 기여한 귀중한 자료이다 (유현진 2002, 40-41). 또한 약 120여 종의 무용 작품과 10여 개의 대작들을 바탕으로 펴낸(성앵란 2006, 29) 『무용소품의 사상예술적 높이를 위하여(1966)』, 『인민의 애국투쟁 을 반영한 우리나라 무용예술(1966)』, 『예술적 기량과 예술적 연마(1964)』, 『예술적 전통 과 예술적 창조(1965)』, 『조선무용 동작과 그 기법의 우수성 및 민족적 특성(1966)』 등은 민족무용관의 정립, 전통과 창조와의 관계, 민족적 독창성과 현대성과의 관계를 이론으로 정립시키고자 노력한 저서로, 예술 완숙기에 정치적 이념 차원을 넘은 최승희의 민족무용 이론과 심미차원의 예술사상을 투시해 볼 수 있다(유현진 2002, 41).
2) 문학서
2017년 4월 22일 세계일보에 기고한 차길진에 의하면 자서전으로는 26세에 발간한 에 세이 형식의 일본어판 『나의 자서전(1936)』과 한국어판 『최승희 자서전(1937)』 2편이 있 으며, 단편소설로 『전선(戰線)의 요화(妖花) (1938 월간지 야담(野談)』1편을 집필하였다.
3) 기고문
무용에 대한 일소고를 기고한 수필문에는 1928년 1월 1일 『조선일보』의 “수만 관객앞 에서 비희교집의 생활 고국의 웃음, 이국고독 난언의 슬픔”과 일본 동경에서 작성한 1928 년 1월 1일 『매일신보』의 “조선무용의 개량-그것은 우리의 의무올시다”(이애순 2010, 195-196) 및 2024년 9월 1일 현재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소 웹사이트에 보존된 “날씬한 다리는 무용가의 보물(1929 별건곤)”, “석정막과 나의 관계(1933 신여성)』, “조선을 떠나 면서–오직 여러분의 성원을 바랄 뿐입니다(1937 여성)”, “무용15년(1940 조광)” 등 6편이 있다.
무용이론을 피력한 논설로는 2017년 4월 22일 세계일보에 기고한 차길진에 의하면 해 방 이전의 당시 조선 사람들의 무용에 대한 몰이해를 지적하면서 자신의 신무용론을 펼친 “일가일언(一家一言, 1930 삼천리)” , 새로운 의식 아래에서 무용예술운동을 주창한 “공연 무대에 서서는(1931 삼천리)”, 1932년 만국부인(萬國婦人) 10월호 기획기사 ‘신여성의 신 생활론 No.1’에 기고한 “신여성이여 무용하라”, 무용은 시대와 사회의 산물이라는 예술사 회학적 철학을 주장한 “조선민중과 무용(1932 제일선)” 등이 있으며, 월북 이후에는 무용 극의 체계적인 발전을 확립한 “무용극 원본 창작 강좌(1965 조선문학 신문)”(성앵란 2006, 29)과 중국의 예술무용 계몽기 시대에 무용창작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무용창작 제 문제를 논함(1951 중국 문예보)”, 무용과 문학이 접합된 창작론 “무용과 문학-무용극원본 창작을 중심으로(1961 문학신문)”등 3편이 있다(유현진 2002, 41).
Ⅲ. 아놀드 하우저의 예술사회학 개념 및 전제조건
예술에 대한 사회학적 관점은 막스 베버(Max Wer)와 같은 초기 학자들뿐만 아니라 칼 마르크스(Karl Marx)와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의 진술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으며, 예술사회학은 초기 프랑크프루트 학파 구성원들에 의해 하나의 이론적 단서를 마련하며 점차 발전되어갔다. 이 중에서도 대표 학자, 아놀드 하우저(Arnold Hauser)의 예 술사회학은 예술과 사회와의 관계에 있어서 예술의 본질과 자율성을 사회과학적인 관점에 서 바라볼 수 있는 이론적 단서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백철현 2007, 1). 하우저가 성장한 역사적 시기는 19세기에 발전한 문화과학이 마르크스주의와 사상적으로 대립한 시기로, 시민적 문화과학과 마르크스적 유물론이 공존하는 시기였다. 이와 같은 시 대적 모순과 이중성은 하우저 사상에 그대로 반영되었으며, 1차 세계대전과 1930년대 사 이에 예술에 대한 그의 핵심적 명제를 발전시켰다(구진경 2001, 2).
예술은 한편으로 그것이 아무리 예술가의 주관적 세계의 표현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처해 있는 사회적-역사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사회적 현실의 객관적 모방에 불과한 것 같아 보이는 예술작품 속에서도 예술가의 주관적 체취와 손길이 남아 있기 마련이 다. 예술만이 사회와 역사의 반영인 것이 아니라 예술에 관한 우리의 인식도 역사적으로 영향 을 받는다(Arnold Hauser 1998, 136-137).
하우저의 정신사적 영향을 미친 인물은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의 대표자라 할 수 있는 게 오르그 루카치(Georg Lukacs)와 지식사회학의 선구자인 칼 만하임(karl Mannheim)이다 (구진경 2001, 2). 루카치는 표현주의를 ‘소시민적인 저항의 표현’으로 보고, 표현주의의 저항은 시민계급의 제국주의 및 파시즘에 대한 가상적인 투쟁을 전개했을 뿐이며, 자본주 의에 대한 단순한 선동적인 비판으로 변해버린 저항이라 비판하였다(Arnold Hauser 1984, 381). 한편, 하우저는 예술사회학에 만하임의 지식사회학적 접근방법을 적용해 예술이 개 인적 이념이나 가치를 표현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사회적 맥락에서 창조된 것임으로 개인 의 창조행위는 의미와 내용에 있어 사회적(김영수, 이남복 1989, 16-17)이라는 기본명제 를 수립한다.
그의 이론은 시민사회학의 영향과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적 유물론의 도전을 받았으며, 이후 신마르크스주의로 분류되는 프랑크프루트 학파에 의해 인정받았다(Arnold Hauser 1998, 136-137). 2024년 10월 20일의 위키백과 웹사이트에 따르면 프랑크프루트 학파는 전통적인 마르크스 이론으로는 20세기에 자본주의가 예상 밖으로 급격하게 발전한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칸트의 비판철학과 독일 헤겔 철학의 관념론을 이용해 변증 법적 모순이 현실의 본질적 특징이라 주장하였다. 즉, 하우저의 핵심 명제가 지닌 예술은 주관적 정신의 표현이라는 입장이 시민적이라면, 예술은 객관적 현실의 모사이며 반영이 라는 입장은 마르크스적이라는 이중구조의 모순성이 예술의 본질로 수용된다(구진경 2001, 2).
이와같이, 하우저는 마르크스주의를 비판적으로 수용하였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 예 술론과 차별화된다.
1. 마르크스주의 역사적 유물론의 비판적 수용 및 차별성
하우저는 역사주의, 실증주의, 마르크스주의 방법론들이 서로 경쟁하던 시기에 성장하 여 이들은 통합한 대표적인 예술사회사 및 예술사회학의 이론가이다. 특히 마르크스주의 는 그의 예술사회학의 정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하우저 예술사회학이 형성된 사상 적 배경을 연구한 구진경(2001)에 의하면, 초기 예술에 사회학적 접근방법은 일찍이 뗀느 (Taine Hippolyte Adolphe)와 귀요(Jean Marie Guyau)의 학문적 전통에서 강조되었지만, 하우저의 예술사회사에 적용된 사회학적 방법은 마르크스주의에 이론적 토대를 두고 있다 (3). 즉, 뵐플린(Heinrich Wölfflin)의 형식주의 이론에 따라 예술사의 내재적 논리를 지향 해 왔던 하우저는 예술사 전개과정에 사회학적 상황이 지니는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의 방법론에 철저하게 마르크스 사회이론에 함축된 중심적인 명제 즉, 사적유물론을 사용하 였다. 그러나 그는 예술사회학의 정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마르크스주의를 세밀하 게 분석하여 비판적으로 수용 및 마르크스주의의 근본원리인 역사적 유물론에 수정을 가 한다. 역사적 유물론은 정치, 법률, 철학, 종교와 같은 모든 이데올로기의 체제가 경제적 사회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명제로 표현된다. 하우저는 이와 같은 역사적 유물론을 근본 적으로 수용하지만, 하부구조는 단순히 경제적, 물질적 관계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정신 적, 의식적, 개인적인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시민사회학적 입장을 취한 다(구진경 2001, 3-4).
따라서 하우저 예술사회학의 구조는 마르크스주의 역사적 유물론과 달리, 시민사회학 이론이 동시에 공존하는 이중적 구조의 독창성을 지님을 알 수 있다.
2. 표현주의 예술에 대한 사회주의 이론의 비판적 수용 및 차별성
하우저에게 정신사적 영향을 미친 인물 중 한 사람은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의 대표자라 할 수 있는 게오르그 루카치이다. 루카치는 표현주의를 ‘소시민적인 저항의 표현’으로 보 고, 표현주의의 저항은 시민계급의 제국주의 및 파시즘에 대한 가상적인 투쟁을 전개했을 뿐이며, 자본주의에 대한 단순한 선동적인 비판으로 변해버린 저항이라 비판하였다 (Arnold Hauser 1984, 381). 그러나 하우저는 루카치의 표현주의에 대한 사회주의 견해를 분석하여 표현주의에 내재된 보헤미안성 개념은 수용하되, 반시민성 개념에는 반론을 제 기하며 비판적으로 수용했다. 이는 그의 저서 『예술의 사회학 (1984)』의 ‘2. 현대예술의 전제 조건들’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루카치의 표현주의적인 반시민성에는 부르조아의 어떤 보헤미안 개념이 개제되어 있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표현주의자들은 파시스트들으l 투쟁 동지들이자 반동에 협력자 였다는 그의 주장은 사실과 정반대이다. 그들은 본래 전쟁이나 군국주의로부터 등을 돌렸으 며, 그들의 분명한 요구들은 억압으로 부터의 해방과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일을 지향했 다(Arnold Hauser 1984, 381).
따라서 하우저가 예술사회사에서 수용한 표현주의의 보헤미안성이 사회주의적이라면, 표현주의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인간의 존엄성 회복 지향을 인정한 점은 시민적이라 할 수 있다. 이에 그의 표현주의 예술사조에 대한 예술사회사 관점은 사회주의적이면서 동시에 시민성이 공존하는 이중적 구조를 지녔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이상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하우저는 예술의 역사철학적 인식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을 ‘소외’에 두고, 여기서 비롯되는 예술에 내재된 이중적 구조를 살펴봄으로써 예술과 사회의 상관에 관한 근본 개념들을 제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구진경 2001, 50). 나아가 이러한 예술의 이중적 구조는 하우저의 예술사회사에서도 성립된다는 점에서, ‘예술의 이 중적 구조’는 그의 학문적 정체성을 성립하는 이론적 전제 조건이자, 사회주의적 예술이론 및 시민적 예술이론과 차별되는 독창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Ⅳ. 아놀드 하우저의 예술이론과 최승희 논평, “조선민중과 무용” 비교분석
Ⅱ장 자료분석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최승희가 발표한 무용이론 관련 기고문은 수필문 과 월북 이후의 논설을 포함해 총 13편이 있다. 이 중에서 초기 최승희 논설은 “일가일언 (一家一言, 1930 삼천리)”, “공연무대에 서서는(1931 삼천리)”, “신여성이여 무용하라 (1932 만국부인 10월호)”, “조선민중과 무용(1932 제일선)”이상 4편이다. 이 논설들은 최 승희의 ‘의식개혁을 통한 새로운 조선무용의 탄생’이라는 예술 신조의 표명으로 집약될 수 있다. 이 중에서 “조선민중과 무용”은 무용이론을 논리적, 체계적으로 피력한 첫 논평이자, 새로운 조선무용을 만드는데 필요한 예술의 기본철학과 이론 즉, 예술사회학 담론을 구체 적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2024년 9월 1일의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소 웹사이트에 전문(全文)이 보존된 “조선 민 중과 무용(1932. 8. 제일선 56면)”은 크게 4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一장, ‘머리말’에서는 ‘조선민중과 무용’을 주제로 글을 쓰게 된 동기 및 당시 일반적인 무용에 대한 말을 설명한 다고 밝히었고 二장, ‘무용은 시대와 사회의 산물이다’에서는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무용 이 시대와 사회를 초월해서 존재하지 못한다는 예술사회학적 관점의 주장과 함께 기성무 용가들 및 표현주의 무용의 비판 그리고 미래 무용발전을 위한 무용의 본분으로 무용을 대중에게 환원할 것을 제안하였다. 三장, ‘조선민중과 무용’에서는 조선이 새로운 무용 건 설에 얼마나 어려운 환경 즉, 사회문화적으로 퇴폐적이고 불건전한 무용의 유행 및 최승희 무용을 상업적이며 타락하고 비속적인 것으로 비평하는 예술계 분위기에 대한 고충과 비 판을 토로하였다. 마지막 四장 ‘나중의 몇 마디’에서는 새로운 무용을 만들기 위한 끊임없 는 노력과 이를 건설할 많은 차세대 무용가들의 진출에 대한 바램을 밝히었다.
따라서 논평에서 최승희의 예술사회학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은 예술사회학 관점의 무용이론을 표명한 二장과 三장임을 알 수 있다. 특히, 二장과 三장은 예술을 역사철학적 으로 고찰한 아놀드 하우저 예술사회학의 핵심 명제 및 이를 수립하기 위한 이론적 전제 조건들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1. 아놀드 하우저 예술사회학의 핵심 명제와의 유사성
최승희의 二장 도입부 문장을 원문으로 제시하면 아래와 같다. 원문은 한문을 한글 번역 및 필요시 주석을 ( )표기하였으며, 띄어쓰기를 지금의 표기법으로 수정해 사용하였다.
다른 부분의 온갓 예술도 그러할 믿는 바이나, 이 무용이란 것도 결국에 잇서는 시대라는 것과 사회라는 것을 초월해서는 잇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생각한다. 물론 무용가 또는 무용비평가에 따라서 무용을 시대와 사회의 현실가튼 것과는 아무 관계업시 다만, 순전한 무용의 전당 안에서 생각하는 이들이 잇는 것이나, 그들은 자긔네들이 주관적으 로 아무리 부인한다고 하여도 결국에 잇어서는 역시 그것을 초월치 못하고 잇다는 것을 깨달 아야 할 것이다. 이제 그것을 멧가지 역사적 사실로서 증명하는 것이 여러 가지 이미에서 의의잇는 일일 것이다(최승희 1932, 56).
다음은 아놀드 하우저가 주장한 예술사회학의 핵심 명제이다.
예술은 한편으로 그것이 아무리 예술가의 주관적 세계의 표현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처해 있는 사회적-역사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사회적 현실의 객관적 모방에 불과한 것 같아 보이는 예술작품 속에서도 예술가의 주관적 체취와 손길이 남아 있기 마련이 다. 예술만이 사회와 역사의 반영인 것이 아니라 예술에 관한 우리의 인식도 역사적으로 영향 을 받는다(Arnold Hauser 1998, 136-137).
이는 곧 예술가는 사회나 역사로부터 벗어 난 고립된 존재로서 순수미적 세계의 탐구라 는 진공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부단한 접촉을 통해서 객관세계의 여러 카 테고리를 제반형식으로 빌어 표현하는 존재임을 의미한다(구진경 2001, 5).
따라서 ‘예술은 시대와 사회적 현상이며, 예술가의 인식도 시대와 사회의 영향을 받는 다’는 명제 아래, 이를 역사적으로 고찰하고자 한 하우저의 이론과 ‘무용이 시대와 사회의 현실과 관계없는 순순 무용이라 생각하는 것은 기성무용가들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무용 역시 사회를 초월하지 못하며 이에 대한 역사적 증명은 의미있는 일’이라는 최승희의 주장 이 유사함을 알 수 있다.
2. 아놀드 하우저의 역사철학적 예술인식, ‘소외’개념과의 유사성
다음은 최승희가 무용의 시대와 사회적 산물임을 증명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고찰한 二 장 중전반부의 문장이다. 이를 원문으로 제시하면 아래와 같다.
원시시대 무용은 .....(중략).....그 시대의 자기네들 생산행동 즉, 수렵과 기타생산노동을 재생산하기 위하야 연속된 운동과 선율로서 손짓과 발숭네로 그 당시의 상황과 광경을 재현 시키려고 한 행동잇섯든 것이다. 봉건시대.....(중략)...... 즉, 그 시대의 무용은 직접간접으로 승려와 귀족들의 생활과 부시이데올로기(심리)을 반영식힌 것이었다. 그것이 새로운 시대 즉, 오늘날의 자본주의사회에 들어오게 되자 모든 것은 귀족적 종교적의 것에서 개인적 자유 주의사상에 개성을 해방하라는 것이 그들의 모터이며 절규이었다......(중략)......무용도 거긔에 보조를 맟추어 지금까지의 궁전과 사원의 인형무용에서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적 경향으로 흘러갔다......(중략)......던칸은 그 당시의 신흥부르조아지의 개성을 진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무용을 위한 무용 즉 순수한 의미의 무용지상주의자였다...... 이하 생략(최승희 1932, 56).
다음은 하우저가 교육계층에 따른 예술분화이론 중 민중예술 부분에서 논의한 구석기 시대 예술과 중세 예술의 변천사이다.
구석기 시대의 예술가들은 비생산적, 기생적 경제단계에서 식량을 생산하기 보다 채집 또는 원시적 수렵민들이라 할 수 있다......(중략)......순전히 실용적 활동이 삶의 전부였던 이 시대에는 만사가 생존을 위한 노력중심으로 진행되었음이 분명하며, 예술이라고 해서 식량조 달과 무관한 어떤 다른 목적에 이바지했으리라고 가정할 만한 근거는 보이지 않는다(Arnold Hauser 1984, 228).
그리스인들처럼 중세시대의 찬가와 영웅가는 지배자계급이 산출해던 가장 순순한 신분문 학이었다......(중략).....찬가와 영웅가는 전적으로 예술문학과 귀족예술이었다......(중략)......민 족이동기(중세 이전 시기)의 민중은 귀족문학 이전에 그리고 귀족문학과 더불어 동시에 의식 형식, 주문, 수수께끼, 격언 및 짤말한 서정시 등 공동체문학을 발전시켰는데, 여기에는 예배 의식을 거행할때나 장례식 혹은 연회시에 공연했던 합창, 무용가 및 노동가가 포함된다 (Arnold Hauser 1984, 231-232).
다음은 구진경(2001, 53)이 하우저 예술이론의 기본 전제조건에 핵심 개념인 ‘소외’를 역사철학적으로 고찰한 부분이다.
고대 예술은 의식적이고 주술적인 기능을 띄고 있어 사회와 자연스런 조화를 이루었지만 근대와 현대로 들어오면서 예술은 다양한 영역으로 나누어지게 된다. 즉, 고대부터 중세 말까 지 이르는 시기의 예술은 실천적 관심과 심미적 관심이 불가분의 통일성을 이루고 있으며, 경험적이고 사회적인 현실과 분리되지 않았다. 이와는 반대로 근대 초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기의 예술은 직접적 생활의 영역으로부터 점차 분리되고, 예술은 개인의 내면성과 밀접하 게 연관된다. 이같이 근대부터 발전하기 시작한 예술과 예술가의 자율성은 현대에서 예술 소외를 야기한 반면에 예술의 본질은 근대의 자율성을 통해 순수한 형식으로 나타나게 되었 다(Arnold Hauser 1987, 45-52).
이상의 4문장 내용을 비교해 보면, 3가지 측면에서 공통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하우저가 민중예술에서 논의한 구석기 시대의 예술가들이 채집 또는 원시적 수렵민들로 생존과 식량 조달을 위해 존재했다는 주장과 최승희가 원시시대 무용은 수렵과 기타 생산 노동을 재생산하기 위함이라는 주장은 당시 예술이 생존과 경제활동에 직결되어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둘째, 하우저가 중세 시대의 문학은 전적으로 예술문학과 귀족예술이며, 당시 예배의식이나 장례식, 연회시에 공연했던 예술가로 무용가를 포함한 점 셋째, 무용 이 봉건시대에 귀족과 종교집단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였다는 최승희의 주장은 근대 이전까지의 무용이 지배계층을 위한 예술이었다는 점에서 일맥상 통한다.
3. 아놀드 하우저의 표현주의 예술비판 이론과의 유사성
1) 표현주의 예술의 형식화 비판
최승희는 표현주의 무용의 기교화와 형식화에 대해 二장 중후반부에서 다음과 같이 비 판하였다. 이를 원문으로 제시하면 아래와 같다.
그러나 이러한 긔성무용가들 즉 무용의 전당안에 칩거하든 무용지상주의 무용가들은 그들 이 토대로 하는 자본주의사회가 근본적으로 그가 포함하고 잇는 모든 모순을 스스로 발노식 히게 되는 때에 무용 역시 지금까지의 무용의 영천(靈泉:병에 신기한 효험이 있는 샘)을 일허 버리고 말았다. 지금까지의 개성의 해방을 부르지즌 것 같은 것은 이때에는 발서 아무 산 내용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그럼으로 긔성무용은 어느듯 내용을 잃고 다만 긔교가 남았을 뿐이다......이하 생략(최승희 1932, 56).
하우저는 현대예술의 전제조건들 피력하며, 표현주의의 위기로 형이상학적인 형식화를 비판하였다.
표현주의의 위기는 사람들이 예술가가 표현의 주체로서 종종 침묵을 지키며 제작물들을 되어가는 대로 내버려 두며, 언어 자신이 시를 짓고, 악기들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소리를 울리고, 영화 카메라가 제멋대로 돌아가도록 내버려 두었으며, 예술가는 형이상학적 인 경악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는데 있다(Arnold Hauser 1984, 383).
따라서 하우저와 최승희 모두, 표현주의의 예술 의식 또는 내용 없는 형이상학적 형식주 의를 비판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발견된다.
최승희는 三장 후반부에서 퇴폐적이고 불건전한 무용 유행을 비판하였다. 이를 원문으 로 제시하면 아래와 같다.
......(생략) 대체로 조선대중의 흥미를 보면 그들은 무용보다도 소위 레뷰(같은 시대의 인물 과 사건들을 묘사하거나 풍자하는 노래나 춤, 촌극, 독백 등으로 이루어진 가벼운 오락극, 다음 어학사전, 2025) 같 것을 한층 더 환영하는 것 같다. 물론 무용에 비하여 데뷔(레뷰)-형 식이 표현력도 풍부하니까 민중에게 환영을 받는 것은 사실일는지 모르나 그것도 조선민중이 레뷰에 대하는 태도가 결코 건강한 예술을 진정하게 구하는 의미에서가 아니고 퇴폐한 변태 기분에서 그것을 환영하고 있는 것이다.....(중략)......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무용가의 임무 라는 것은 그러한 대중의 불건강한 병적 요구에 대하여 굴종하는 것이 아니고 그이들이 될 수 있는 대로 정당한 의의(意義)의 것에 나가지도록 선을 고(긋고) 나가는데 있을 것이다..... 이하 생략(최승희 1932, 56).
이는 Ⅲ장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하우저가 표현주의의 보헤미안적인 반시민성 개념을 수용하는 동시에,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인간의 존엄성 회복 지향의 시민성을 인정한 점 은 당시, 퇴폐적이고 불건전한 무용 유행을 비판하면서 건강한 대중무용으로의 지향을 주 장한 최승희의 견해와 개념적으로 유사하다. 2024년 1월 15일의 위키백과 웹사이트에 의 하면 보헤미안은 19세기 후반에 사회의 관습에 구애되지 않는 방랑자,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예술가·문학가·배우·지식인들을 지칭하는 단어로, 2025년 2월 28일의 위키백과 웹사 이트에 의하면 보헤미아니즘(Bohemianism)에는 남에게 얽매이지 않고 검소한 삶을 사는 사람들, 고상한 철학을 생활의 주체로 삼는 사람들이라는 긍정적인 뜻과 함께 일정한 직업 이 없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 몸가짐이 헤픈 사람들을 가리키는 부정적인 뜻을 함께 갖고 있기 때문이다.
2) 표현주의 예술의 불건전성 비판
한편, 하우저는 『예술의 사회학(1984)』에서 현대의 도시에서 대중의 욕구로 발생한 통 속예술의 개념을 규정하였다. 그 특징으로 오락, 긴장해소 및 무목적이고 방종한 유희성을 제시하였다. 이를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통속예술은 때로는 편안함과 만족 수준으로 때로는 무제한적으로 충일된 감정과 극단적인 센세이션 수준으로 떨어진다. 단순한 기분풀이와 오락은 진정한 예술에 대한 단순한 오락물 로 감각에 아부하고 비판의식을 흐리게 하는 싸구려 감정의 몽상으로, 또는 난폭하고 분방하 며 무모한 정열 속에 숨은 조야한 속임수 등으로 되기 쉽다(Arnold Hauser 1984, 234-235).
하우저가 말한 통속예술은 향유층에서 보면 대중예술이며, 예술 수준에서 보면 저급예 술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최승희가 지칭한 레뷰(revue)와 일맥상통한다. 2025년 2월 28일 의 다음 어학사전 윕사이트에 의하면 레뷰는 동시대의 인물과 사건들을 묘사하거나 풍자 하는 노래나 춤, 촌극, 독백 등으로 이루어진 가벼운 오락극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4. 아놀드 하우저의 현대예술의 과제와의 유사성
최승희는 二장 후반부에서 참된 의미의 새로운 무용을 주장하였다. 이를 원문으로 제시 하면 아래와 같다.
......(생략)......참된 이미로서의 새로운 무용이란 것은 지금과 가티 어떤 일부의 사람들의 수중으로부터 대중의 수중으로 쓰러 나리지 아느면 아니될 것이다. 그러한 것은 과거의 긔성 무용가들은 무용의 타락이고 말할 사람이 잇슬는지 모르나 그것은 결코 그러치 아니하고, 그러케 되는 데서 뿐 무용은 미래의 무용 자신의 역할과 의무를 다할 것이다(최승희 1932, 56).
이를 요약하면 그녀가 새로운 미래 무용으로서 ‘예술의 대중으로 환원’ 및 대중예술에 내재된 타락성을 극복한 ‘건강한 대중무용예술’을 주장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하우저가 『예술사의 철학(1983)』에서 논의한 현대예술의 과제이다. 그는 이 논의에서 삶의 총체성 회복, 예술의 보편성 확보 그리고 그 미학원리로 참된 혹은 위대한 예술에 공존하는 대중 예술성과 민중예술성에 대해 언급하였다.
예술은 순수한 관념과 예지를 거부하고 보편성을 확보함으로서 삶의 총체성을 감각적으로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유일한 매체가 되어야 한다.....이하 생략(정영복 2001, 51). 한편, 위대한 예술은 거의 저급한 종류의 예술적 요소를 내포하고, 가장 탁월한 작품은 즐겁고 흥미 롭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저급한 예술 수준의 특징적인 수단과 방법을 채용한다. 이에 위대한 예술작품은 흔히 민중예술이나 대중예술과 어떤 유사성이 있으며, 민중예술이나 대중 예술의 수준까지 내려가기도 하고, 이를 능가하기도 한다(Arnold Hauser 1983, 85-286).
두 문장을 비교분석하면 첫째, 최승희가 새로운 미래 예술로 주장한 ‘대중으로의 환원’ 과 하우저가 현대예술의 과제로 제시한 ‘예술의 보편성 확보’는 다수의 사람에게 두루 통 용되는 예술 지향이라는 점에서 개념적으로 유사하다. 둘째, 이율배반적으로 존재하는 ‘건 강한 대중무용예술에 내재된 통속예술성’과 ‘위대한 예술에 내재된 민중예술성과 대중예술 성’은 개념적으로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최승희 논평, “조선민중과 무용”은 아놀드 하우저의 예술사 회사 및 예술사회학 개념의 기본 전제조건, ‘예술의 이중적 구조’이론과 개념적으로 매우 유사성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조선민중과 무용”에서 나타난 최승희 무용철학 의 예술사회학성은 아놀드 하우저 예술이론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Ⅴ. 결론 및 제언
그동안 최승희의 무용사상은 표현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 계몽주의, 오리엔탈리즘 (orientalism), 근대성 등 주로 예술미학적인 관점에서 철학적, 문화적, 정치적 사조 등을 고찰해 왔다. 그러나 그녀의 무용철학을 예술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집중적으로 논의한 연 구는 많지 않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리서치 기반의 제25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와 무용역사기록 학회의 공동기획으로 이뤄진 도큐퍼포먼스 「Reconnect History, Heare I am (2022년 9월 29-30일 문화비축기지T1, 예술감독 최해리, 연출 김재리, 드라마투르기 정혜정)에 참여한 안무작, 「Composition」의 공동 리서치 과정에서 발견된 최승희의 첫 논평, “조선민중과 무용”을 작품화하고, 이를 아놀드 하우저의 예술사회학 이론과 비교분석하였다.
연구 결과, 최승희가 “조선민중과 무용”에서 피력한 예술사회학적 무용이론은 아놀드 하우저 예술사회학 이론과 개념적 유사성이 존재하였다. 이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하우저 예술사회학의 핵심 명제, ‘예술은 역사적, 사회적 현상’과 최승희의 견해 ‘예술은 시대와 사회를 초월하지 못하며 이를 역사적 증명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은 매우 유사하다.
둘째. 하우저 역사철학적 예술인식의 핵심 개념인 ‘소외’와 최승희 예술사적 관점은 두 가지 측면 즉, 생존과 경제활동에 직결되는 원시 고대 예술 및 근대 이전 예술은 귀족예술 로서 무용은 지배계층을 위한 예술이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또한 최승희가 비판한 퇴폐적이고 불건전한 무용은 하우저가 규정한 통속예술과 개념적으로 유사하다. 통속예술 은 도시 대중의 욕구에 의해 탄생된 것으로 향유층에서 보면 대중예술이며, 예술 수준에서 보면 저급예술이기 때문이다.
셋째, 하우저의 ‘예술의 보편성 회복’ 및 최승희의 ‘무용을 대중에게 환원’ 주장은 다수 의 사람에게 통용되는 예술 지향이라는 점에서 개념적으로 유사하다.
넷째, 하우저가 현대예술의 과제로 논의한 ‘위대한 예술에 공존된 민중예술성과 대중예 술성’ 및 최승희가 새로운 미래 예술로 주장한 ‘타락성을 극복한 건강한 대중무용예술’은 예술의 이중구조 및 개념적으로도 유사하다. 대중예술에는 통속성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 이다.
다섯째, 하우저와 최승희는 모두 표현주의의 내용 혹은 의식 없는 형이상학적 형식주의 를 비판했다.
이상의 연구 결과는 아놀드 하우저의 예술사회학 이론이 최승희 무용철학의 예술사회학 성 형성에 영향 가능성을 시사한다. 특히, 시대문화적 측면에서 최승희의 독립적인 활동시 기와 아놀드 하우저의 예술사회학 성립시기가 1930년대 전·후반이라는 점, 또한 가족환경 적 측면에서는 2017년 4월 22일 세계일보에 기고한 차길진에 의하면 최승희가 『최승희 자서전(1937)』을 통해 카프(KAPF,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의 핵심 회원으로 활동 한 오빠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진보적, 정치적 성향의 문학을 더 좋아했음을 밝힌 점 및 1931년 결혼한 남편 안막 역시 카프의 핵심 회원이라는 점 그리고 하우저의 예술사 회학이 마르크스주의 역사적 유물론을 비판적 수용한 신학파라는 점 등은 그 추정 가능성 을 보다 뒷받침해 준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심도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아놀드 하우저 예술이론과 최승희 무용철학의 예술사회학성 탐구는 그동안 거의 조명되 지 않은 하나의 새로운 작은 발견으로, 최승희 무용철학과 무용이론의 대한 다각적인 시각 을 가능케 한다. 나아가 현재 예술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최승희 무용철학 연구가 미진하다 는 점에서 앞으로 적극적인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본 연구는 최승희 예술사회학성을 논평, “조선민중과 무용”에 한정해 미시적으로 연구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시대적, 사회적, 문화적인 측면에서 거시적이고 다면적인 최승희 예술사회학성 탐구가 요청됨을 제언한다.
본 연구는 도큐퍼포먼스 안무작, 「Composition」의 공연내용을 학술적으로 고찰한 실행 연구이다. 이는 일반적인 렉쳐 퍼포먼스의 단선구조에서 한 단계 발전한 실기와 학술융합 의 상호 선순환적인 역할(1단계 리서치와 2단계 공연 그리고 3단계 학술연구)을 보여주는 일 사례로, 도큐퍼포먼스의 창조적, 실천적, 예술적, 학술적 가치를 확장시키는 하나의 방 향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리서치만이 공연에 기반되는 것이 아니라, 공연도 학술연 구에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실기와 이론 융합의 새로운 하나의 발전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